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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퀀텀 오브 솔러스’로 돌아온 제임스 본드, ‘스카이폴’에서는?

‘스카이폴’에 앞서 ‘퀀텀 오브 솔러스’를 추억하며

김태훈 기자 | 기사입력 2012/02/17 [22:10]

[기자수첩]‘퀀텀 오브 솔러스’로 돌아온 제임스 본드, ‘스카이폴’에서는?

‘스카이폴’에 앞서 ‘퀀텀 오브 솔러스’를 추억하며
김태훈 기자 | 입력 : 2012/02/17 [22:10]
제임스 본드가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로 돌아왔다.
 
007이 돌아왔다, 매우 인간적인 모습으로
 
냉전이 종결되자 적이 사라진 그는 한동안 엉뚱한 재벌들이나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연명해야 했다. ‘썬더 볼’ 이후로 가속화된 시리즈의 블록버스터화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맥락의 변화로 인해 ‘살인 면허’는 실패했다.
 
이후 턱시도 입은 스파이는 설득력을 잃었고 신종 스파이들의 출몰은 007의 존립을 위협했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수호하는 영국 첩보원이 다시 호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틴 켐벨이 ‘카지노 로얄’을 찍자 시리즈는 간단히 부활했다. 대니얼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본드는 숀 코너리처럼 멋을 부리기보다는 표적을 잡는데 육탄 돌격을 감행하고 진심으로 여인을 사랑하는 등 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신작의 설정들도 그리 신선한 것은 못된다. 홍보 팸플릿과는 달리 본드는 이미 국장의 명령을 거스르고 조직을 이탈한 전력이 있고 여인을 사랑한 나머지 사표를 낸 적도 있다. 조지 레젠비가 ‘여왕 폐하 대작전’에서 시도했던 실패한 실험은 대니얼 크레이그에게 바통이 넘어 와서야 결실을 맺은 셈이다.
 
옛 시리즈에 바치는 오마주, 관객들을 사로잡다
 
상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심발론(symbolon)’은 여행객들이 쪼개서 나누어 가지던 청동 거울을 의미하는 말이다. 22번째에 이른 이번 작품은 거울의 반쪽처럼 드라마 투르기를 전적으로 전작의 스토리텔링에 떠맡기고 액션의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몰두한다.
 
이미지 쉐이커와 핸드헬드를 남용하는 액션에 몰입하다가 장면이 지나간 뒤에 정적인 컷이 던져진다면? 관객들은 뭔가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망연자실함에 사로잡힐 것이다. 관객의 신경을 쥐었다 펴는 이런 솜씨로도 이미 보통 이상이다.
 
또한 팬서비스 차원에서 옛 시리즈에 바치는 오마주도 있다. 해외여행의 재미를 대신 안겨주는 다국적 로케이션도 그렇거니와 원유를 뒤집어쓴 여인의 시체는 영락없는 ‘골드핑거’, 사막의 호텔 듀나스는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수중기지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각종 상징과 암시, 평론가들에게 ‘빅엿’을 먹이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전작에 비해 퇴보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마크 포스터의 ‘연을 쫓는 아이’를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잘린 채 버려진 양의 목이 지니는 상징성을 의식했다면 말이다. 감독이 내러티브의 농밀한 구축보다는 이미지를 통한 상징과 암시에 강하다는 점을, 빈곤에 시달리는 이국 변방에 대한 관심이 어려있음을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퀀텀 오브 솔러스’에 대한 평가는 상당부분 수정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오프닝신을 찬찬히 뜯어보면 건질만한 건더기가 산적해있다. 날아가는 도중에 증발해버리는 총탄은 말 그대로 ‘헛발’이 되어 이 첩보전을 가장한 여행이 목적지로 도달불능임을 암시한다.
 
모래 언덕을 넘어 물이 있는 곳을 향하던 본드. 그의 앞에 펼쳐진 물은 사막의 모래로 뒤덮어 말라버리고 작열하는 태양과 실루엣 이미지가 대조를 이룬다. 늘씬한 여인의 실루엣이 대량 복제되고 그 한가운데 포위되어 추락하는 본드는 냉전 이후 피아의 불분명 속에서 좌초하는 본드 시리즈의 운명과 영화 속 대적과 치르는 싸움의 결말을 은밀히 누설하고 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적들에게 둘러싸인 007
 
비스콘티가 첩보물을 연출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각인시키는 오페라와 추격전의 교차 편집, 그리고 음향적 몽타주는 장중한 비극의 기운을 퀀텀 오브 솔러스에 입힌다. 실체를 다 드러내지 않은 적은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맞서게 된, 강대하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역대 최강의 적이다.
 
도미닉 그린을 일원으로 끼어놓은 퀀텀은 국제 금융 자본가의 모임이며 각국 정부조차 천연자원을 둘러싼 이해관계로 이들과 사보타주하기에 바쁘다. 본드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상대로 하게 된 것이다. 분명히 활동의 배경과 당위성만을 제시했던 이전의 적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권력의 위상은 국가 권력을 능가해있으며, 각국 정보국만이 아니라 정상급 관료도 이들을 손대지 못한다. 미스터 화이트의 말처럼 하수인은 어디든지 널려있다. 본드 혼자서 악전고투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지 않은가?
 
적들이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을 때를 상상해 보았는가?
 
본드에게 발급된 법인카드가 강제로 정지당하는 데서 우리는 미시적인 일상 구석구석에까지 침투해 있는 자본의 힘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데이비드 하비의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에서 “노동자는 장소(place)를 장악하지만 자본가는 공간(space)을 장악하기에 노동계급은 이기기 어렵다”는 말을 쓰고 있다.
 
밥줄은 적이 쥐고 있고 그 적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하지 않은가? 퇴역한 전직 스파이 마티스의 도움으로 겨우 궁지는 면하지만 일시적일 뿐 자본이 정해놓은 틀을 벗어나진 못한다. 자본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자는 자본을 잃으리니. 이리하여 서구 선진국의 헤게모니 옹호라는 007시리즈의 태생적인 장르적 약점은 오히려 메시지를 심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 세 방울 속에 현실을 담아내다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상품화할 수 없는 것도 상품화하게 된다고 한건 이미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서 ‘공산당 선언’에서 경고했던 바, 도미닉 그린을 표면에 내세운 세계의 재벌조직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을 무기로 볼리비아 민중의 생존을 위협한다.
 
공급이 끊기면 물의 가치가 치솟을 것은 자명한 이치. 지맥을 흐르던 물은 비밀리에 지어진 댐에 가두어진다. 흐름을 단속하고 분절하여 분리하고 저장하는 일방적인 서구 근대화의 폭력은 다시 확인된다.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세 방울의 물.
 
심도촬영으로 얻어진 단일 숏의 물방울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106분의 짧은 러닝타임과 액션 시퀸스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현 국제 정세와 경제의 동향 등 이 정도의 현실적인 내용을 반영하고 담아낸다는 건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
 
장르의 본질과 현실이 충돌하면서 긴 장탄식이 남는다. 격렬한 액션 뒤의 허무감과 함께. 강자는 약자의 피와 살을 갈취하고 제임스 본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는 끝내 도미닉 그린의 댐을 폭파하지 못하며 국장의 품에 돌아온다. 이 시대의 영웅이란 표상은 실상 메타적 조직체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기에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댐을 폭파해서 가뭄으로부터 볼리비아를 구했다하더라도 제 3세계에 대하여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는 서구인의 오만이란 지적을 들었겠지만.
 
단순한 오락물에서 벗어난 시대 통찰, ‘스카이폴’에서 이어질까?
 
요컨대 퀀텀 오브 솔러스가 지니는 영화사적 의의가 있다면 반휴머니티의 극한에 도달한 자본주의 말기의 묵시록이라는 점일 것이다.
 
킬링 타임용으로 일관해온 이제까지의 시리즈에는 없었던, 전형적 오락물의 틀에서 벗어난 시대 통찰이야말로 그나마 주어지는 자그마한 위안이다. 하지만 복수와 구호,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종결되는 결말은 지극히 신중하다.
 
엔딩 크레딧의 말미에 “제임스 본드는 돌아올 것(James Bond Will Return)”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올 11월 9일 그는 ‘스카이폴(Skyfall)’로 컴백한다. 속편은 과연 ‘퀀텀’의 실체를 대면할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기자수첩 =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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