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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범죄와의 전쟁’, 현실을 증거함으로 시대를 변화시킨다

옛 세대에 대한 연민과 애도…하지만 죄악의 사슬은 끊어져야

김태훈 기자 | 기사입력 2012/04/17 [11:43]

[기자수첩] ‘범죄와의 전쟁’, 현실을 증거함으로 시대를 변화시킨다

옛 세대에 대한 연민과 애도…하지만 죄악의 사슬은 끊어져야
김태훈 기자 | 입력 : 2012/04/17 [11:43]
‘범죄와의 전쟁’이 대박났다. 개봉한지 4일 만에 관객 수 100만을 돌파하더니 올해 개봉작 중 처음으로 450만 관객을 넘었다.
 
범죄 세계와 주류 사회를 오가며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발휘해 특권 계층의 자리에 오르는 남자. 그런 남자의 인생 역정을 다룬 영화가 놀라운 흥행성적을 올리는 동시에 수많은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거를 다룬 허구, 현재를 반영하다
 
영화는 허구지만 그에 대한 관중의 몰입 여부는 극이 지닌 현실감에 기반하고 있기 마련이다. 실제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 안에 당대의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장치가 결여되어 있다면 이런 정도의 센세이션은 불가능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극장을 찾는 일반 관객들은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정치권과 사법부의 갖가지 비리들을 이 영화 속의 장면에 대입시켜 봤을 것이고,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의 주된 시간적 배경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임에도 불구하고 극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부정부패, 뇌물과 청탁, 그리고 특혜 사면 같은 일들이 여전히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이를 두고 단순히 지나간 과거로 넘기지 못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태로 받아들일 여지가 큰 것이 사실이다.
 
이는 영화의 구성 자체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를 거치던 이 영화적 시간대는 2012년 당대의 시간으로 급작스럽게 점핑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극장 밖의 현실로 돌아오도록, 당대의 사회정치상이 떠오르도록 교묘히 유도하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이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까지 있어온 한국형 갱스터 장르인 조직폭력배를 다루면서도 이들을 시대의 로빈 후드나 임꺽정, 혹은 코미디의 아이콘으로 전락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대적이고 현실적인 맥락과 능수능란하게 접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대부’의 한국 버전?
 
감독은 이 영화에 세태풍자를 넘어서 마피아 연대기의 성격까지 불어넣고픈 욕심이 있었나보다. 그러나 한국 사회 이면에 은폐된, 이전투구처럼 지리멸렬한 부정부패의 연쇄고리, 가부장적 종법질서에 대한 냉철한 관점은 장르의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을 넘어서있게 한다.
 
‘범죄와의 전쟁’이 ‘대부’와 공통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마피아와 조폭이라는, 사회의 정상성과는 동떨어져있는 폐쇄적 집단을 다룬다는 것. 더 나아가 이들 집단의 행동원리인 ‘가족주의’의 심층을 해부한다는 점이다. 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하여금 범죄에 손을 대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가족이 아니던가?
 
이 오이디푸스적 부계 서사의 중심에는 당연히 아버지가 있다. ‘범죄와의 전쟁’은 한국형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에서 마이클 꼴레오네가 자신의 손에 묻힌 엄청난 피들은 ‘패밀리(Family)’의 화목과 안녕, 번영을 위한다는 명분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최익현도 마찬가지다 말마따나 가족보다 더 중요한 명분은 없는 것이다. 가족의 생계와 화목을 위해서,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를 두고 어느 누가 감히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가족주의를 넘어서…모호한 정체성의 최익현을 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가족의 내부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가족주의의 외부로 빠져나와 객관적인 가치판단의 거리를 두고 최익현을 바라보게 한다. 문제는 최익현이라는 인물의 직업적 정체성이다.
 
세관 공무원에서 조폭의 대부가 되었다가 권력의 핵심으로 우뚝 서는 그의 계급상승 일로를 연대기적으로 펼쳐내는 영화의 러닝타임 133분 동안 일관되는 모티브가 있으니 바로 최익현이 지닌 정체성의 모호성, 그의 자기분열적인 면모에 있다.
 
반쯤 건달이라는 의미에서 쓰는 ‘반달’이라는 말도 그렇거니와 이 영화에서 최익현의 성격을 규정짓는 상징적인 두 개의 아이콘이 있다. 일단 야쿠자 두목에게서 선물받은 권총. 이 총은 영화 전체에서 세 번에 걸쳐 등장하는데 나머지 두 번은 익현이 형배의 측근과 다툼을 벌일 때, 그리고 검찰과 공모하여 형배를 잡아넣을 때이다.
 
이때 이 두 번의 텅 비어버린 권총은 같은 영화적 장치임에도 상황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먼저 빈 탄창은 실질적인 폭력이나 조직 내의 실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익현의 처지에 대한 동일시로 기능한다.
 
‘주먹’을 이기는 ‘권력’의 현실
 
하지만 이 ‘쏘아질 수 없는’ 탄창은 그 다음에 이르면 더욱 무서운 함의로 승화한다. 싸워야할 때 싸워야 하는 건달의 주먹조차 제압할 수 있는 힘, 바로 ‘권력’이다.
 
익현은 ‘대부’의 비토 콜리오네처럼 귀족적 품격과 신화적 위엄을 지니지도 않으며, 형배와 같은 깡을 지닌 인물도 아니지만 능구렁이같은 처세술과 인맥을 가지고 이 폭력의 이전투구 속에서 승자가 된다.
 
아마도 감독은 익현의 캐릭터를 조형하는 과정에서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의 이인국 박사를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서 소련군 진주기를 거쳐 한국 전쟁을 통해 실질적인 미군정 치하의 한국으로 넘어가면서도, 어디서든 상류계급으로 살아남는 이인국의 캐릭터는 익현과 겹치는 정도를 넘어 동일시해도 괜찮을 정도로 오버랩된다.
 
역사의 발전 과정은 인간의 이름과 자리, 신체와 권력의 비례관계를 무너뜨려왔다. 그는 시류를 읽고 있으며 형배와 같은 조직폭력배가 차츰 자본주의화하고 근대적 정치제도의 기틀이 정립되어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힘을 잃고 몰락할 것임을 안다. 관객들은 영화의 도중에 익현이 자신의 아들과 함께하는 몇 개의 쇼트를 기억할 것이다.
 
폭력배에서 권력자로의 신분상승…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잠든 아들을 쓰다듬는가하면, 가족과의 식사 중에 아들의 영어 실력을 시험하는 그 장면에서 우리는 익현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이 단순한 조폭 이상임을 직감하고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바로 이것이 감독이 ‘범죄와의 전쟁’ 속에 담고자 한 메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다.
 
노태우 정권 시절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지만 정작 처벌되야 할 자들은 처벌되지 않았고 근절되어야 할 것들은 근절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특권화되고 법의 테투리 안에서 합법화한 화이트 컬러 범죄의 형태로 더욱 정교화되었을 뿐이다.
 
폭력배에서 사회 헤게모니층으로의 이 신분상승의 궤적, 불법적 폭력에서 합법적 폭력으로 변이 내지 전이는 그야말로 합법적인 발전인 것처럼 인식된다. 익현의 노력은 마침내 그의 아들이 법조인이 됨으로서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냉철하다못해 싸늘하기 이를데없다. 그 자신의 비천한 뿌리를 버릴 수 없는 자가 상류계급으로 올라간들 정의로운 사회지도층이 될 리가 만무하며 그러기에 주먹에서 법으로 수단만이 변할 뿐, 부정부패는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한 질서? 질서를 위한 가족?
 
‘멈춰버린 왕조의 시간대’와 ‘여전히 진행 중인 근현대의 시간대’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에서 외양은 근대화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부계중심의 가부장적 종법질서가 편재하고 있다. 이 전근대와 현대 사이에 벌어진 편차를 치고 빠지지 않는 이상 이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영화는 넌지시 말한다.
 
가족은 사회적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동시에 가장 은밀하고 폐쇄적인 조직형태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의 관습이나 규범은 엄연히 사적 영역에 속하며 국민 국가 전체의 보편타당한 잣대가 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가족주의가 사적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까지 전이되는 데에서 일어난다. 공적 영역의 운영논리는 공익과 사회 정의에 바탕하기 마련인데 여기에 가족의 논리가 적용되는 순간, 그 조직 내부에 속한 관계자들이 서로의 이권을 옹호하고 지켜주기 위한 수단으로 공권력의 역할이 변질되고 만다.
 
최익현이 같은 문중의 어르신을 통해 최주동 검사와 친분을 맺고 그의 비호 아래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은 바로 이런 공적 영역의 사유화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이런 경우 국가 조직은 정당성을 잃고 존재 의의를 의심받게 되며 이는 민주주의 정신의 존립 근간을 흔들게 된다.
 
가족을 위해선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 될 수 있다?
 
헌데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해야 할 공적 영역들, 예컨대 정치권과 법조계가 ‘자기 식구들’ 챙기는 폐쇄된 조직이 되어 절대 소통될 수 없는 기준과 상식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면서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지 않던가?
 
공적 영역이 내부 관계자들만을 위한 파티장이 되어버리고, 사회 구성원의 권익을 보장해야 할 공권력이 다수를 소외시키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여기에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면 이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나 성찰의 가능성은 일말의 여지없이 봉쇄되고 만다.
 
그러기에 세관 공무원이었다가 공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합법화된 조폭이 된 사내가 그 아들을 법조인으로 키워낸다는 ‘범죄와의 전쟁’의 결말에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픈 현실의 잔영을 상기시키는 씁쓸한 여운과 동시에 어떤 비아냥거림이 감돈다.
 
‘가족’만을 챙기기 위해 가족의 이익에 반하는 타자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마피아나 조폭이 ‘자기 식구’의 정치적, 금전적 이해를 위해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과 권력을 남용하는 정치계, 법조계와 다를 것이 과연 무엇인가?
 
당장의 현실을 바꾸지 못하지만, 현실을 증언함으로써 바꿔나간다…이것이 바로 ‘범죄와의 전쟁’  
 
공적 영역에 대한 어떠한 신뢰나 기대도 가질 수 없게 된 이 시대, 곧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냉소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의의가 있는 것은 그것이 한 시대의 풍경, 그 안의 공기를 담아, 사후에 역사를 증언함으로서 나름의 복수를 할 수 있기 때문 아닌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형배와 익현이 대립의 각을 세우게 된 사무실에서의 언쟁 장면을 떠올려보자. 여기서 우리는 깨어진 거울의 금 사이로 일그러져버린 익현의 얼굴을 보았다.
 
가정에 헌신하는 좋은 가장이지만, 법법행위를 일삼고 공무원이면서도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공적 영역을 사유화해버린 그의 자기 분열적인 모습은 문자 그대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서의 아버지에 다름 아니다.
 
이를 보고서 관객들은 비판의 날을 세우는 한 편으로는 씁쓸한 연민을 품을 수밖에 없다. 분명 극중의 인물들, 아버지 세대의 행태는 잘못된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들이었고 우리는 그들의 밑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쓰디쓴 여운과 동시에 어떤 결의를 품게 만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야만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 이 시기를 뚫고 힘겹게 살아와 우리를 키웠던 옛 세대에 대한 연민과 애도를 표하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 죄악의 연쇄를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범죄와의 전쟁’의 단호한 선언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기자수첩 =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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