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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밀본은 없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1)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본 세종대왕

임재황 기자 | 기사입력 2011/11/03 [23:03]

[기자수첩] ‘밀본은 없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1)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본 세종대왕
임재황 기자 | 입력 : 2011/11/03 [23:03]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곧 재상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지만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가 죽는다. 부실한 꽃은 꺾으면 그만이다. 왕은 오롯이 재상을 선택하고 재상과 협의하는 자리이며 조선이라는 나무의 화려한 상징일 뿐이다.

조선의 뿌리는 재상인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이여 뿌리가 되어라. 조선을 떠받치는 선비가 되어 뛰어난 관료들을 키워내고 현능한 재상을 세워라. 하여 조선이라는 나무가 만만세가 될 수 있도록 뿌리 중에 뿌리가 되어라.

이것이 나 정도전이 뿌리 중에 뿌리 숨겨진 뿌리 밀본을 만든 이유이다. 사대부들이여 이 조선의 뿌리가 되어라. 밀본이 되어라. 조선을 지켜라”

▲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업적을 그린 사극 ‘뿌리깊은 나무’ 
SBS 대하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중 정도전의 아우인 정도광의 집아래 동굴에서 발견된 ‘밀본지서’의 내용이다.

고려 말기 정도전과 이성계를 비롯한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세력들이 생기고 홍건적과 왜구가 난입을하며, 왕권은 약화되고 힘을 가진 귀족들의 횡포가 만연해졌다. 이때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힘으로 조선을 세웠다.

조선이란 나라는 다른 국가처럼 힘으로 세워졌다. 그리고 그 힘인 왕권이 강화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군사를 다스릴 병권이였고, 다른 하나는 친위대를 유지시키며 왕이 국세와 신하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 위한 내탕금이였다.

이성계는 당시 함경도의 3분의 1정도를 소유하고 있었고, 왜구의 침공과 황건적의 난과 같은 전쟁에서 계속 공을 세워 병사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였다. 이성계는 병권과 내탕금, 이 두 가지를 손에 넣은 강한 왕권을 가졌다. 즉 조선 초기는 정도전이 바랬던 신권사회가 아닌 왕권사회였다.
 
이도의 묘호(廟號)가 세종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이성계가 죽고난 후 태종 이방원은 왕권을 위협하는 정도전 일파를 정리하고, 장차 자신의 아들인 세종에게 위협요소가 될 왕의 외척들을 대거 숙청했다. 그런 이방원의 모습을 본 세종 이도는 드라마 속 이방원과의 대치에서 자신의 조선은 이방원의 조선과 다를 것이라 말한다.
 
“권력이라는 독을 내뿜는 것이 아닌 안으로 삼켜, 인내로 참고 문(文)으로 치세를 할 것입니다. 모든 무(武)는 오직 외적을 방비하고, 영토를 수호하는데만 쓸 겁니다. ‘무’라는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문’이라는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그런 조선입니다. 칼이 아닌 말로써 설득하고, 모두의 진심을 얻어내어 모두를 오직 품고 모두 제 역할을 하게하는 그런 조선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릴 것입니다.”

물론 위의 글은 드라마속 대사다. 실제 세종이 어떻게 말했는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세종의 삶을 돌아 봤을때 충분히 했을 법한 말이다. 세종은 무로써 신하를 다스린 것이 아닌 경연과 설득으로 신하들을 다스렸다. 세종이란 묘호(廟號)처럼 누구보다 책을 좋아했고, 학식이 깊었으며, 법에 밝았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종은 ‘어떻게 문으로 치세 할수 있었을까?’, ‘왕의 권위에 도전하려 하는 자들에 위협을 받지 않았을까?’. 고려 왕족이 멸족되고 조선에 사대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곤 하지만, 아직 나라는 불안정했고 조선의 기틀은 불안했다. 때문에 태종은 모든 병권을 자신에게 모아 왕권에 위협을 끼치는 정적들을 제거해 나갔으며, 왕의 직속군대인 의금부를 만들었다.

6조직계제를 실행하여 왕이 국정사를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태종이 왕권을 강화하여 왕권에 위협을 끼칠 요소들을 제거한 기틀 위에 세종의 ‘무’가 아닌 ‘문’의 정치가 시행되었다고 볼수 있다. 세종의 정치에 숨은 공로자는 바로 태종이다.

세종은 즉위 기간동안 약 9천회의 경연을 펼쳤다고 한다. 경연은 본디 신하들이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였지만, 오히려 이 경연을 통해 백성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한 예로 방송에도 등장했던 그 유명한 ‘부민고소금지법’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와 다르게 부민고소금지법에 완전히 반대한 것이 아니라 허조와 안숭선 등의 의견을 모두 조율하여 타협점을 찾아 ‘수령의 잘못을 고발할 때 잘못된 것을 고치고 수령을 벌하지 않는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즉, 세종은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 위한 경연을 가졌던 것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신하를 충분히 힘으로 다스릴 수 있음에도 참고 기다리며 설득으로 타협점을 찾아나섰다. 신하를 설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논리적으로 이치를 펼쳐 신하들을 힘이 아닌 말로 설득했다. 얼마나 책을 봤으면 책 때문에 눈병이 났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이도의 묘호가 세종(세상(世)중 으뜸(宗))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세종의 가장 뛰어난 업적에 대하여

익히 알고있듯이 세종은 장영실을 통해 과학발전에도 힘을 썼고, 농사직설을 편찬하였으며, 김종서를 통해 4군6진을 개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종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드라마와 원작인 책에도 등장하듯이, 세종은 백성과의 소통을 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한국어를 사용하던 한민족들에게 한자는 낯선 언어였고, 신분의 차이로 인해 배우기 힘든 문자였다.

이에 세종은 쉽고 간편하며 널리 사용될수있는 언어를 만들어 백성과 소통하고자 하였다. 당시 한글, 즉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의 단어나 문장을 표기하는 이른바 차자표기(借字表記)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중국의 한자로 한국어를 표현하는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위에 언급했듯이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언어는 곧 글이고, 글은 곧 언론이다. 언론을 통제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문맹으로 만드는것이다. 그리한다면, 일반 백성들은 듣고 판단하는것이 아닌 듣기만 한다. 말의 참과 거짓을 분별치 못하기 때문에 소문으로 여론을 형성하기에도 쉽다. 하지만, 백성들이 깨우치길 원했던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한다.

한글이 창제된후 지배계급의 이익이 없는것은 아니였지만, 연산군 때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하는 벽보등이 붙을정도로 백성들의 자의식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것은 지배계급층에게 있어서는 그리 유쾌한일은 아니였다. 때문에, 세종은 양반들의 눈을 피해 한글을 창제했다.

하나의 언어를 만듦에 있어서, 모든 힘을 하나로 모아도 부족하지만, 양반들의 반대를 염려한 세종은 심지어 집현전의 학자들에게도 비밀로 한 채 한글 창제를 진행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든것으로 알고 있지만, 성삼문은 한글이 창제될 무렵 집현전에 들어왔고, 신숙주는 창제 2년전에 들어왔지만 다음해 일본으로 갔다. 따라서 관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히려 집현전 학자들중 일부는 한글 발표후 가장 상소를 많이 올린곳 중 하나였던곳으로 밝혀졌다.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세종은 한글을 만들어 배포했다. 비록 후대에 ‘언문’이라 불리며 양반들에게 천시 받게되지만, 한글을 만든것은, 단순히 언어를 만든것이 아닌 그 당시 백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했다고 볼 수 있다.

한글 창제가 중요한 이유

하나의 언어가 탄생하는 것은 쉽다. 규칙을 만들고 체계를 세우면 된다. 하지만, 그 언어가 유지되고 널리 사용되기 위해서는 사회성과 과학성이 중요하다. 사회성이야 그 당시 백성들이 쓰는 언어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고, 과학성 또한 독창적인 원리와 이원적 구성, 계열적 구성, 모아쓰기 방식으로 만들어져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로 뽑혔다.

한글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오늘날 몇몇 학자는 훈민정음을 ‘백성들을 훈계하는 바른소리로써 경전에서 전하는 아름다운 풍속을 훈민정음으로 쉽게 깨우쳐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도리를 알려주기 위한 문자였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한글도 그 당시에는 심한 반대에 직면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최만리의 상소문이다. 최만리는 상소문을 통해 문자를 만드는 것이 중국을 사대(事大)하는데 방해가 되고, 중국 글자가 아닌 고유 문자가 있는 나라는 모두 오랑캐 민족이며, 현재 이두를 사용하고 있다는 등의 5가지 이유를 들어 한글 반포에 반대했지만, 세종은 한글이 백성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글임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여 신하들의 반대를 모두 물리쳤다.

비단 백성들의 소통이 원활해졌다는 의미만으로 한글 창제가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당시 신하들이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이유중 하나는 기득권층의 권력욕이였다. 본디 조선의 계급은 양인과 천민, 즉 양천제였다. 법적으로는 중인과 상민도 과거를 볼 수 있었지만, 여러가지 제약을 많이 걸어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한자였다. 세종 이후 언문이라 하대 받으며, 양반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한글이 만약 과거시험에 등장했다면, 신분사회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권력욕으로 한글은 통제되고 하대받았다.

이후 양반들은 세금과 군역의 의무를 가지지 않았고, 방납 등을 자행하여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으니 그 권세가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한글의 창제는 이런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도전은 ‘뿌리는 재상이요 꽃은 임금’이라 말하며 꽃은 썩으면 꺾으면 그만이지만, 뿌리는 썩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상도 썩었다. 명종때 외척이였던 윤원형이 대표적인 예이다. 즉 온전한 뿌리는 없다. 진정한 뿌리란 국민이다.

세종은 이를 알았기 때문에 서얼출신도, 무관출신도, 심지어 관노출신도 주요 관직에 임명했다. 세종장헌대왕실록에 기록된 세종의 말 중 백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을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 곧 태평성대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 눈여겨봐야할 점이다. 현대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하기 힘든 생각과 행동을 그 당시 세종은 했던 것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백성들을 힘으로 누른 것이 아니라 말로써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백성을 품으려 노력했다. “백성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니 처벌해서는 안 되는것이고, 설령 오해와 그릇된 마음으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아예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세종의 이 말은 지도자라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다. 설상 쓰러져도 다시 새 잎이 돋는다. 진정 뿌리깊은 나무는 국민이 살아있고 깨어있는 국가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면, 오늘날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세종때의 역사가 귀중한 거울이 됐으면 한다.
 
기자수첩 = 임재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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