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쉐어 NewsShare -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정론!

‘킹덤 오브 헤븐’ 뒤에 ‘로빈 후드’가 있었다

[기자수첩] 부조리한 질서를 넘어 새로운 질서로

김태훈 기자 | 기사입력 2011/12/03 [14:21]

‘킹덤 오브 헤븐’ 뒤에 ‘로빈 후드’가 있었다

[기자수첩] 부조리한 질서를 넘어 새로운 질서로
김태훈 기자 | 입력 : 2011/12/03 [14:21]
리들리 스콧은 십자군 전쟁을 다룬 ‘킹덤 오브 헤븐’의 상업적 실패 이후 다시 ‘로빈 후드’를 통해 중세 유럽의 역사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감독판이 복원되고 공개되면서 실추된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그에게는 못다한 이야기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명궁이자 의적으로 알려진 로빈 후드의 전설을 감독은 통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버린다. 영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 기점으로 평가되는 1215년 마그나카르타의 승인에 허구의 인물 로빈 후드를 던져놓는 식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로빈 후드’는 ‘킹덤 오브 헤븐’의 연장선상
 
깐느 영화제 개막 상영 직후에 쏟아진 실망스럽다는 평단의 반감은 이것이 일종의 프리퀼이라는 점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번 작품은 로빈 후드의 기원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 엄밀하게 말해서 ‘킹덤 오브 헤븐’의 속편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는 이 영화에 배경과 미장센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무역사적인 시공을 다루는 설화와 달리 인물의 동선을 역사의 진행과 동일선상에 노정시킴으로서 감독은 비평으로서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천명한다.
 
그의 영화적 야심은 미국이라는 현대 제국의 프레스코화를 필름으로 각인하려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중세 유럽은 당대의 미국이고 십자군 원정은 이라크 전의 등가비교물이기 때문이며, 이런 이분적 도식을 통해 감독은 미국에 대한 양가적인 시선을 드러내려 한다.
 
지난 역사를 환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현실을 투영한 반사 이미지이자 우회적 비평이기 마련.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대극이다. ‘로빈 후드’가 지니고 있는 전작과의 모종의 혈연 관계는 영화 안에서 이미 숨겨진 장치로 보여지고 있다.
 
단적인 증거로 인상파 미술의 감각으로 디자인된 엔딩 크레딧이 그러한데 유심히 보고 있으면 본편이 아닌 다른 영화에서 차용한 컷을 애니메이션 처리한 면면이 발견된다. 예배 시간 절을 올리는 아랍의 군대, 황금 십자가를 내세우며 진격하는 십자군과 아랍인을 도륙하는 모습 등은 분명 감독 자신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잘라내어 가공처리한 숏이다.
 
은밀한 단서를 디테일 속에 감추어 두고 미완의 텍스트가 되기를 자처함으로서 감독은 영화를 역사적 픽션과 당대 현실이 조응하는 해석학적 지평을 향해 활짝 열어버린 것이다.
 
예루살렘 공방전이 살라딘의 승리로 종결되고 성지가 함락되자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다시 십자군을 일으켰다. 신성 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는 참전하기도 전에 강물에 빠져 익사했고 사자왕 리처드는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한 끝에 1192년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필자가 개연 설명한 이 대목의 역사를 리들리 스콧은 바로 건너 뛰어버린다. 우리는 사이에 놓여진 이 간극에 부시 행정부 집권기의 미국이라는 적합한 역사적 대응물을 대입해넣을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두 에픽 연작의 정치적 의미는 완결되는 것이다. ‘로빈 후드’는 ‘킹덤 오브 헤븐’이 종결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로빈 후드, 대중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대변자가 되다
 
발리안과 시빌라 공주가 떠난 뒤 성지로 들어가는 리처드 1세의 등장을 목격한 우리는 십자군의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프랑스에서 분투하는 사자왕의 모습을 보게 된다. 늙고 초췌해진데다가 전쟁에 대한 회의감과 피로감이 역력한 그의 모습은 현재 미국의 모습이 투영된 자화상처럼 보인다. 위대한 왕은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지에서 인력과 물자를 소비하며 붙잡혀있다.
 
주인공인 로빈 후드는 영화상에서는 왕의 군대에 편입된 궁수로 등장한다. 민중의 솔직한 의견을 구하는 왕의 면전에서 그는 전쟁의 무자비함과 의미없음을 숨김없이 피력함으로서 감독의 페르소나인 동시에 관객인 미국 대중의 목소리를 옮기는 영화적 대변자가 된다.
 
성전을 외치며 이교도를 학살하고 약탈하러 간 십자군과 테러와의 전쟁을 빙자하여 석유 자원과 중동 지역의 패권을 노린 이라크전이 본질적으로 하등 다를게 무어랴. 일찍이 노엄 촘스키 등의 지성인 사회 일각에서 명분없는 미국의 국제 전쟁에 던지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는 있어왔던 것.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던가. 우리는 갑작스레 넘어가는 점프컷에서 형구에 결박당한 로빈 후드와 동료의 모습을 보게된다. 반전 여론을 무시하고 때로는 억압하면서 전쟁에의 자가중독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던, 반성을 모르는 국가상의 반영. 이 전쟁은 리처드 왕의 죽음으로 상정되는 부시 행정부의 퇴진으로 일단락이 나고 영화의 초점은 전쟁비용 부담으로 피폐해진 영국 국내의 사정으로 옮겨간다.
 
세금 부담을 견디다 못해 주민들의 생활은 피폐해졌고 일부는 집을 버리고 유랑민이 되어 숲으로 숨어들었다. 리처드의 왕좌를 동생인 존이 물려받지만 그의 대에 와서도 수탈과 착취는 더욱 심각해지기만 할 뿐이다. 요컨대 전쟁비용으로 탕진한 국가 재정을 충당해야 겠다는 것.
 
무역센터 테러 이래 군산복합체와 초국적 기업만 이득을 얻었을 따름이지 미국의 일반 시민들은 서브프라임 붕괴 사태로 집을 잃고 불안정한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로 몰리고 말았으며 국가 장치는 신뢰를 잃었다. 12세기 영국 촌락의 시대상에 대한 묘사 역시 현 시대와 대구를 이루는 것임을 일일히 지적한다면 그야말로 사족일 것이다.
 
근세 민주주의 정신의 대표, 로빈 후드
 
이쯤에서 잠시 의적으로서의 활동을 예고하듯 로빈 후드는 요크로 수송되는 마을의 곡식을 탈취하여 논밭에 뿌린다. 전원의 풍경을 서정있게 포착해낸 밀레의 그림에서 이미지를 빌려온 감독은 노팅엄을 법과 제도의 압제에 항명하는 자족적 촌락 공동체로서 그려내고 마을을 이끄는 로빈 후드의 모습을 초기 사회주의자의 코뮌적 이상향에 닮아있게 만든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적인 비전으로 영화가 흘러갔다면 ‘로빈 후드’는 이전의 동일 전승을 다룬 영화들과 다를 것이 없었을 터이다. 반란을 일으키고 왕에 저항하여 자유를 쟁취한다는 식의 틀에 박힌 서사는 ‘브레이브 하트’만으로도 신물나게 보아온 터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이나 대책없다고 할 것이다.
 
로빈 후드는 강압적인 조세 징수와 약탈에 반감을 품은 북부 지역 영주들의 지도자가 되어 프랑스와의 전투를 이끌게 되는데 이때 그는 왕의 존재와 계급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보다 민중적인 견지에서 민중을 위한 정치의 실현을 요구하려 하며 왕에게 ‘계약’을 제시한다.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데 협력하는 대신 폭정을 자제하고 민의를 반영한 정치를 베풀라는 것.
 
‘백성없는 왕은 있을 수 없다’와 ‘법 안에서의 자유’에 의거하여 왕과 민중이 동등한 입지에서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제정하고 준수하는 일종의 사회 계약을 성립시키는 것인데 이로써 영화는 헐리우드적인 저항 서사의 클리셰로부터 거리를 두며 로빈 후드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근세 민주주의 정신의 기수로 추대된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2003년에 기사 작위를 수여받은 이래 리들리 스콧 영화의 캐릭터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의 전작 격이라 할 ‘킹덤 오브 헤븐’에서 주인공 발리안이 대장장이에서 기사가 되고 예루살렘 공방에 앞서 성안의 모든 이들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는 것처럼 ‘로빈 후드’ 역시 기사로 승격된 활잡이의 신분 상승과 의식의 고양, 즉 정체성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거기에다 안주인 마리앙은 반 귀족 반 서민인 중간자적 입지의 인물이다. 이름-자리의 경계와 신분 질서의 가치 구분표를 가로지르는 등장 인물은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레플리컨트들이나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에게서도 발견되는 공통된 지점이지만 감독은 여기에 기사도 정신의 이념을 덧씌운다.
 
“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늘 용기있게 선을 행할 것이며 생명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라”는 소명을 신념으로 삼는 인물이 전면으로 나와 극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반 오이디푸스적인 좌파성은 없지만 ‘만인 기사 주의’라 칭해도 좋은, 낭만화된 기사도 정신으로의 회귀와 민중 연대를 통해서 현실의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겠다는 결기가 사뭇 진지하다.
 
‘로빈 후드’는 미국에 대한 비평이었다
 
늙은 기사 윌터 록슬리의 입에서 로빈 후드의 아버지와 가문에 감추어진 역사가 드러난다. 극의 흐름이 급작스럽게 변하는 지점이기에 감독판의 존재가 암시되기도 하지만, 이 플래시 백이야말로 ‘로빈 후드’가 미국에 대한 비평으로서의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일어나고 또 일어나라. 양이 사자가 될 때까지(Rise and rise again, until lambs become lions)’의 문장이 대변하듯 로빈 후드의 아버지는 민권 사상에 각성한 근대적 선구자이며 계몽적 이성의 총아였음이 드러난다.
 
봉건질서 안에서의 자기계급성과 주권 개념을 자각한 평민으로서의 지식인.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이 미국 독립 전쟁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로빈 후드의 아버지가 석판을 가공하는 석공이었다는 데서 연관성은 더욱 결정적인 것이 된다.
 
미국이란 국가는 본래 건축물을 다루던 석공 길드로부터 유래한 프리메이슨 집단에 의해 건국된 나라가 아니었던가. 연판장의 존재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유사성의 증거일 것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유물이 되어버린 미국 건국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관객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왕 필립 2세의 상륙 부대와 일전을 치르는 전투 장면은 스타일리쉬한 감각으로 일관한다. 부서지는 물방울과 모래, 빛의 질감을 공감각적으로 잡아내는 개각도 촬영과 슬로 모션의 전격적인 활용, 핸드헬드 카메라로 전투에 참가하는 자의 시선에 뛰어드는 기법은 ‘글래디에이터’ 이래 리들리 스콧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지 오래이다.
 
부분적으로 고증을 무시하고 현대 전쟁의 상륙작전을 모방한 연출은 단적으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바치는 오마주라 할 수 있다. 이 전투에 참가하는 구성원들은 왕과 귀족, 평민과 천민 간의 모든 계급적 분단을 넘어선 거국적 연대로 뭉친 집단이며 전근대적 귀족 계급이 독점하는 전쟁이 아닌,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민족 의식을 갖춘 근대적 시민군의 전쟁이다.
 
전근대성을 물리치는 근대성의 전투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1779년 미국 독립전쟁에 대한 영화적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프랑스왕의 스파이 노릇을 하며 수탈과 학정에 앞장선 고프리를 화살로 쏘는 장면은 아예 화살의 시점으로 피사체에 급속히 접근하는 놀라운 카메라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목을 관통당한다는 점에서 고프리는 전쟁광 리처드 1세와 동일시된다.
 
부조리한 질서를 이탈한 로빈 후드, 새로운 질서를 향해 나아가다
 
위기 상황이 일단락되자 존왕은 민중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로빈 후드를 범법자로 선언, 각지에 체포령을 내린다. 일단의 세력을 이끌고 로빈 후드는 숲으로 들어간다. 깊디 깊은 숲은 왕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법자의 공간이며 동시에 중력으로부터 해방되는 탈주의 공간이다.
 
세 번의 부감과 항공촬영으로 숲의 전경을 훑는 카메라의 시점은 숲이 가지는 이와 같은 공간학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그곳은 부조리한 사회 질서로부터 견디지 못하는 자와 이탈하는 자의 것이다. 그들은 숲을 개척하고 터전을 만들어나갈 것이며 왕도 귀족도, 기사도 필요없는 전혀 다른 질서의 세상으로 숲을 일구어나갈 것이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로 북미 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처럼. 로빈 후드가 마리앙을 껴안는 장면으로부터 영화는 페이드 아웃한다. 두 사람은 불모지인 숲에 신세계를 개척하는 건국의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중세 문학 풍의 자막으로 마치는 엔딩은 영화가 명궁수이자 의적인 로빈 후드 전설의 기원인 동시에 미국이란 국가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재건국을 주장하는 역사극이었음을 암시한다. 장르를 해체하여 역사를 복원함으로서 로빈 후드는 이제까지의 중세 에픽이 걸어온 노정으로부터 이탈한다.
 
기자수첩 = 김태훈 기자

기사제보 - newsshare@newsshare.co.kr
< ⓒ 뉴스쉐어 -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정론. >


 
24
  • 도배방지 이미지

  • [기자수첩] ‘청원생명축제’…안전 불감증, 무엇을 말하나?
  • [기자수첩] ‘윤창중 사태’ 진실공방…결론은 결자해지(結者解之) 뿐
  • [기자수첩] 18대 대선, 결과보다 논공행상이 우려된다
  • [기자수첩] 우리는 왜 좀비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 [기자수첩] '신사의 품격, 40대 '꽃중년'을 '오빠'로 바꿔준 드라마
  • [기자수첩]런던올림픽 계속된 오심, 한국 스포츠외교 갈 길이 멀다!
  • [기자수첩] 전남대 납치사건을 통해 본 신천지와 중세 마녀사냥
  • [기자수첩] ‘범죄와의 전쟁’, 현실을 증거함으로 시대를 변화시킨다
  • [기자수첩] 역사는 반복되는가? 4·27과 10·26 재보선이 연상되는 19대총선
  • [기자수첩]‘퀀텀 오브 솔러스’로 돌아온 제임스 본드, ‘스카이폴’에서는?
  • [기자수첩] ‘스틸 라이프(Still Life)’,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인문고전 읽는 현대인, ‘인문고전’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기자수첩]'나는 꼼수다' 열풍, 한반도 강타
  • ‘킹덤 오브 헤븐’ 뒤에 ‘로빈 후드’가 있었다
  • [기자수첩] 영화로 세계에 알리는 북한내부의 인권실상
  • [기자수첩] 수능 그 치열한 투쟁! 수능 생중계와 자살 그리고 부정행위는 아픈 현실로 남아
  • [기자수첩]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수능당일 수험생 투신!
  • [기자수첩] ‘밀본은 없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1)
  • [기자수첩] 아름다운 욕망을 가져보다, 꿈의 날에
  • [기자수첩]고양 “방송영상벤처타운” 탐방기
  • 이동
    메인사진
    더보이즈 영훈·현재, 자체 콘텐츠 '우리 데이트했어요' 공개... 대환장 브로맨스 폭발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