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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뿌리깊은 나무’ 속 플롯장치가 남긴 메시지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

임재황 기자 | 기사입력 2012/01/05 [20:15]

[기자수첩] ‘뿌리깊은 나무’ 속 플롯장치가 남긴 메시지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
임재황 기자 | 입력 : 2012/01/05 [20:15]
▲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업적을 그린 사극 ‘뿌리깊은 나무’  

‘못생긴 악당이 길을 가는 아름다운 여주인공을 뒤따른다. 우리는 길가에 바나나 껍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카메라는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 껍질과 걸어오는 악당을 번갈아 비춰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알고 있다. 관객들이 그가 바나나 껍질을 밟을 거라고 생각하는 찰나, 그걸 본 악당은 껑충 뛰어넘어서 맨홀에 빠진다.’

찰리 채플린은 희극의 놀라운 구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플롯에 대해 말했다. 사건이 일어나는 장치, 결말에 이르게 하는 장치가 곧 플롯이다. 지나치게 얽혀있거나, 끊어진 플롯은 역효과를 가져오지만, 좋은 플롯은 궁금증을 유발하고, 관객들에게 다음 장면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관객들은 ‘과연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말이 끝나고 나면 ‘로미오와 줄리엣 모두 죽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끝난 ‘뿌리깊은 나무’는 다양한 플롯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강채윤(장혁)이 복수를 꿈꾸는 장면으로 시작할 때에는 이도(한석규)와 적대 인물로 비춰졌지만, 후에는 이도(한석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인물이 된다.

초반부에 별다른 비중이 없던 밀본은 중반 이후로 가장 큰 갈등요소로 떠오른다. 원작과는 다른 캐릭터와 결말은 지나친 플롯이라는 비평도 있지만, 플롯의 역할 중 하나인 현실을 꼬집는 풍자적 의미로 봤을 땐 훌륭한 결말이었다.
 
그렇다면 ‘뿌리깊은 나무’는 어떤 플롯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플롯1.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정기준과 밀본

양반은 양반의 핏줄이기 때문에 양반이 아니다.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몇 대 동안 벼슬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더 이상 양반이 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양반들은 관직에 목숨을 걸었고, 녹봉이 한섬밖에 안되는 자리일찌라도 기를 쓰고 관직에 오르려 했다. 그들에게 관직은 명예의 상징이었다. 그런 관직에 오를 수 있던 자격은 한자를 알고, 읽고, 쓰는 것이었다.

글자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읽고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고하고 분석하며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유학자들은 천자문을 뗀 후 바로 글자를 쓰지 않고, 논어와 사서삼경을 읽고 기본적인 소양을 쌓은 후에야 비로소 글자를 쓰게 했다.

이 때문에 기본적 소양이 되지 않은 백성이 글자를 알게 된다면, 신분사회에 혼란이 생길 것을 예견했던 정기준은 노비와 유생을 죽음으로까지 내몰면서 새로운 글자 창제의 문제와 혼란을 양반들에게 보였다. 그 결과 양반들은 우리 글자에 대해 반감을 증폭시켰고, 정기준은 효과적으로 세종의 글자를 견제할 밑받침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정기준의 밀본은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은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그 갈등이 합리적인 이유라면 시청자는 관심을 집중한다. 뿌리깊은 나무 속 정기준과 밀본은 훌륭한 플롯이었다.

플롯2. 4대 본원이 된 심종수, 그리고 한명회

‘뿌리깊은 나무’의 후반부로 극이 진행되면서 세종의 가장 큰 갈등요소였던 밀본은 결국 그 본거지가 소탕되고, 정기준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 후 심종수가 4대 본원이 되어 밀본을 이끌게 되며, 정기준 밑에서 책사노릇을 하던 한가놈은 한명회라고 본명을 밝혀 시청자들을 반전의 늪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이 한명회가 마지막 회에서 집현전 학사 성삼문과 박팽년을 우연히 만나는 장면과 집현전을 반드시 끝장내겠다는 다짐을 보며 시청자들은 그들의 악연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왕으로 모시며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사육신인 박팽년과 성삼문을 죽이는 인연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것은 극 중 한글을 천대하는 정책을 천명하는 밀본의 4대 본원 심종수와 그 책사 한명회의 모습을 통해 역사 속에서 전개될 다른 이야기까지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의 마지막화까지 숨겨놓았던 한명회는 단연 최고의 플롯으로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의 뇌리 속에 극을 잊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됐다. 극이 끝나는 장면에서 다시한번 시청자들은 놀라게 만든 것이다.

플롯3. 줄초상, 새드엔딩이란 플롯 속에 담긴 메시지

왜 그들은 모두 죽어야만 했을까? 작가는 그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했던 걸까? 

세종의 아들과 충신들이 죽어가며, 세종은 ‘자신의 일 때문에 자신의 사람들이 죽어간다’며 울부짖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마지막까지 한글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세종의 오열을 보고 같이 눈물을 흘리고, 세종을 방해하는 밀본을 보며 같이 분노한다. 작가는 밀본이란 장치를 통해 갈등을 만들고, 갈등을 통해 세종과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많은이들의 바램속에서도 작가는 끝내 많은 이들을 죽이며 한글을 반포하는 결말을 만들었고, 마지막 심종수와 한명회를 통해 한글이 반포는 되지만 널리 쓰이지는 못하도록 한다. 

이것은 픽션이 아니다. 실제 역사가 이와 같이 이루어졌다. 국사를 배우며 그냥 무심코 지나친 한글창제였지만, 그 내면에는 수많은 갈등과 거센 반대가 있었다. 뿌리깊은 나무의 새드엔딩은 우리들의 흘러간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경고다.
 
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보려 하고, 자신의 틀에 비춰 사건을 관찰한다. 아는 만큼 보고, 들은 만큼 말한다. 세종때의 훈민정음은 백성을 깨우치는 참된 글이였지만, 그 시대의 눈들은 참된 가치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보고 싶어하는 눈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나누어진다. 과거 훈민정음의 반포를 막았던 양반들이 존재한다면, 오늘날은 훈민정음이 아닌 다른 것들을 막으려는 권력가 또한 존재할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가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4월 11일 총선이 남아있다. 정치를 혐오하는 국민은 혐오스러운 정치를 가질 자격밖에 없다. 여당과 야당을 떠나, 경상도와 전라도를 떠나, 관심이란 눈을 통해 현란한 언변이 아닌 그 사람의 과거와 공약을 보고 판단한다면, 한국의 정치는 많은 것이 변화될 거라 생각한다.

‘뿌리깊은 나무’가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역사에는 만약이란 가정이 없고, 역사를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새드엔딩이란 마지막 플롯은 오늘을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거울이란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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