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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중고생들과 대학생이 이룬 혁명'

서울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서 '제 58주년 4.19 혁명 기념식' 개최

한도경 기자 | 기사입력 2018/04/19 [12:59]

4.19 혁명, '중고생들과 대학생이 이룬 혁명'

서울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서 '제 58주년 4.19 혁명 기념식' 개최
한도경 기자 | 입력 : 2018/04/19 [12:59]
▲ SBS 뉴스영상 캡처 


19일 오전 4.19 혁명이 올해로 58주년을 맞으면서 서울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에선 58주년 4.19 혁명 기념식이 열렸다.
 
4.19 혁명은 한반도에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최초의 민주주의 시민혁명이다. 당시 중고생들과 대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었으며, 전국 시위로 확산된 이유에는 한 고등학생의 죽음이 큰 역할을 했다.

▲ 시위에 나선 중고생들, SBS 뉴스영상 캡처

 

4.19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은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자유당 정권의 불법·부정 선거였지만, 근본적인 배경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탄압이 있었다. 

 

선거 당일 이승만 대통령 후보와 이기붕 부통령 후보는 4할 사전투표,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투표, 완장 부대 활용, 야당 참관인 축출 등 온갖 술수를 사용한 끝에 각각 85%, 73%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이에 부정선거가 자행된 3월 15일 밤 경남 마산에서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경찰이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하며 무자비하게 강경진압을 일삼았고 이에 7명이 숨지고 800여 명이 다침으로써 마산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를 3.15 마산의거라 한다. 

  

4월 11일 3·15 마산의거 때 행방불명됐던 마산상업고등학교의 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4.19 혁명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 1960년 5월 3일자 고려대학보, SBS 뉴스영상 캡처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총궐기 선언문을 발표하고 세종로-태평로 일대로 진출해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총장 유진오의 만류로 오후 4시쯤 데모를 중단하고, 귀교하는 도중 비호세력인 반공청년단 소속 폭력배들이 고려대학생들을 습격했다. 

  

이에 4월 19일 분노한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중 수천 명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들면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당일 서울에서만 약 130명이 사망했으며 1,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기까지에 이르렀으며 전 국민적 저항으로 시위가 거세지자 이승만은 4월 26일 사임을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다. 이 혁명의 결과로 과도 정부의 수립을 거쳐 6월 15일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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