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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격전의 현장 초지진

어린이들 안보교육 현장 인기

김수현 기자 | 기사입력 2015/07/05 [20:52]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격전의 현장 초지진

어린이들 안보교육 현장 인기
김수현 기자 | 입력 : 2015/07/05 [20:52]
▲ 강화도 초지진에서 아이들이 안보교육을 받고 있다.  ©뉴스쉐어
▲ 초지진에서 바라본 김포 대명항의 모습     © 뉴스쉐어


강화도 초지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 민족 시련의 현장으로써 어린이들의 안보교육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초지진 성곽에 올라서면 김포 대명항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앞에 흐르는 파도의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김포에서 강화를 연결하는 초지대교를 건너 우측에 자리한 초지진은 ‘강화 12진보’ 중 하나로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 구축한 요새로서 역사적으로 많은 격전이 치러졌던 곳이다.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함대,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아세아 함대, 일본군함 운양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이다.

 

초지진에는 신미양요 때 받은 포경의 흔적이 나무와 성벽에 아직도 남아있다. 또 격전 당시 사용했던 대포의 모형이 전시되고 있다.

 

초지진의 역사

병자호란 이후 서해안 수비체제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鎭)들이 강화도와 강화도 근처로 옮겨오게 된다.

 

1653년(효종 4)에 남양의 영종진이 인천부 자연도로 옮겨왔다. 영종진이 자연도에 자리 잡으면서 섬의 이름도 영종도로 바뀌게 된다. 영종진을 남양에서 자연도로 옮긴 것은 자연도가 해상에서 강화도로 진입하는 길목이라는 중요성 때문이다.

 

이제 영종도는 강화도를 지키는 1차 방어선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초지진은 1656년(효종 7)에 안산에서 옮겨왔다. 초지진에서 초지돈대·장자평돈대·섬암돈대를 맡아 지휘했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이다.

 

1875년(고종 12) 일본 운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초지진을 지키던 조선군은 일본군을 격퇴했다. 패퇴한 일본군은 철수하면서 영종도를 해코지했다. 이후 초지진은 허물어졌고, 초지진이 관할했던 초지돈대만 남았다. 정비된 초지돈대 안에는 대포가 전시돼 있다. 돈대 옆 소나무에는 신미양요 혹은 운요호 사건 때 포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소재지 (417-843) 인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
초지진 관리사무소 032)930-7072,3

입장료/요금 청소년,군인 개인 : 500, 단체 : 400, 어른 개인 : 700 단체 : 600

개방시간 1,2,11,12월 (09:00∼17:00) / 3,4,9,10월 (09:00 ~ 18:00) / 5,6,7,8월 (09:0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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