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들의 가벼운 징벌, 고대의대생들의 징계 수위[기자수첩] 성폭력에 관대한 대한민국, 해결방안은 없는가?
[윤수연 기자의 "세상의 모든 순간"]
전세계에서 성폭력에 관해 이렇게 관대한 나라는 이슬람권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가 최고일 것 같다. 고려대학교가 16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고대의대생들의 처벌 수위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대 상벌위 관계자는 “오늘(16일) 열린 회의에서 징계가 결정됐다는 것만 말할 수 있을 뿐 규정상 해당 학생의 소명기회를 거친 최종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외부에 알려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의대는 학생의 소명 절차를 거친 후 총장이 심의 결과를 승인하고 나면 학교 차원에서 공개 여부를 판단해 정식으로 공개할 예정이며 고대 전체 개강일인 29일에 맞춰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고대 의대생들의 징계수위가 재입학과 의사고시가 가능한 ‘퇴학’처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대생들은 물론 많은 누리꾼들과 국민들의 빗발치는 요구대로 ‘출교’ 수위의 처벌수위가 내려졌다면, 고려대가 떳떳하게 이를 밝혔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추측이다. 물론 가해학생들도 억울한 것은 많을 것이다. 재수 없어 하필 걸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집안의 수치로 여겨져 명예 살인을 당하거나 성폭행의 여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가중처벌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바이아에서는 지난 2007년 19세의 한 사우디 여성이 7명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해 가해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 유죄판결과 피해여성에 대한 처벌은 국제적인 논란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 여성에게 가해 남성과 차에 동승한 죄를 물어 태형을 부과한 것이다. 즉 남성에게 ‘성폭행을 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문 것이다. 억울한 피해 여성이 항소를 하자, 사우디 법정은 괘씸죄를 추가해 태형을 60대에서 200대로 늘리고, 징역 6개월을 추가 선고했다. 한국에서 성폭력 가해 남성들을 옹호하는 논리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권 지역의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고대 의대생 중 일부 가해자의 주장대로 성폭력 피해 여성이 ‘평소에 문제가 있었고 여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면 말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까만 차도르로 온몸을 가리고 다니는 여성들에게도 성폭력의 위험은 어김없이 따라다닌다. 성폭력이 반복되고 위험 수위가 높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성폭력은 여성들이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현행 법률상 정해진 형량 이상은 부과할 수 없는 이유로 수많은 성폭력 가해 남성들은 관대한 처벌을 받고 이 범죄를 계속해서 되풀이한다. 지난 2008년 8살 여아를 끔찍하게 성폭행해 전국을 경악시킨 조두순 사건. 이로 인해 피지도 못한 한 아이의 인생은 온몸과 마음까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뻔뻔하게도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한 조두순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징역 12년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성범죄는 징역 15년 이하이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삼았을 때는 가중처벌된다. 그러나 조두순 사건은 가해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가중처벌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량이 줄었다. 당시 이 판결 이후, 우스갯소리로 성폭행을 저지르고 싶으면 술을 많이 마신 후 저지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지난 6월 성폭행을 당해 법정 소송에 나선 한 여성이 담당 판사의 모멸적인 질문을 견디지 못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도 벌어졌다. 성폭행 피해 여성이 법정에서 피해자 증언을 한 뒤 "판사의 질문에 모멸감을 느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자살한 여성은 노래방 도우미라는 점을 가지고 담당 판사가 성폭행범을 두둔하고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긴 바 있다. 당시 담당 판사 역시 같은 논리에 쌓여 있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성폭행 당할 만한 여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현행법상 형법 제297조(강간)에 따르면 13세 미만의 여자에 대하여 강간의 죄를 범한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미성년이 아닌 경우에는 형량이 더욱 가벼워진다. 형량이 무거워진다고 해서 성폭력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재범 방지를 위한 노력들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차마 입에 담기 조차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형량 몇년을 살고 나면, 보석이나 사면 등의 이유로 풀려나 태연히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 이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은 항상 인권문제에 걸려 불가능하다. 고작 내놓는다는 대책이 끊으면 그만인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이다. 이 전자발찌를 차고도 다시 성폭행을 저지르는 범죄자가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문제를 타개할 만한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회나 여성부나 사법부 모두 같은 상황이다. 얼마나 더 큰 피해자가 생기고 얼마나 더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져야 해결방안을 세울 것인가? 고려대 의대 피해 여학생은 가해 학생들이 퇴학 조치를 받을 경우 자퇴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제정신이라면 어떻게 같이 수업을 듣고 학교를 다니겠는가? 지난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자매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 가해 학생만 40여명이 넘는 그 사건에서 처벌을 받은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피해 여학생만 조사 과정 중에서 경찰에게, 가해 학생 학부모에게, 지역 사회에서까지 참을 수 없는 폭언과 모욕을 당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된 상황이 되었다. 피해자에게만 고통을 가중시키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고대 의대생들의 처벌 수위 또한 가볍게 끝날 것이다. 그 똑똑하고 집안 좋은 가해 학생들은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면 이후, 의사 고시에 합격해 의사가 될 것이다. 이후 그들이 또다시 의사로서 어떤 행태를 만들지는 피해자만이 알게 될 것이며, 그 고통 또한 그들의 몫으로 끝날 것이다. 그들이 아니라더라도 성폭력에 관대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2, 제3의 고대의대생들을 우리나라는 계속 양산해 낼 것이다. 기자수첩 = 윤수연 기자 기사제보 - newsshare@newsshare.co.kr < ⓒ 뉴스쉐어 -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정론. > <저작권자 ⓒ 뉴스쉐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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