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쉐어 NewsShare -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정론!

[르포]군산에서 호화를 누렸던 ‘히로쓰’의 집

‘적산가옥’ 일제 잔재 넘어 아픔 간직한 산 교육장 변모

이연희 기자 | 기사입력 2016/04/01 [14:50]

[르포]군산에서 호화를 누렸던 ‘히로쓰’의 집

‘적산가옥’ 일제 잔재 넘어 아픔 간직한 산 교육장 변모
이연희 기자 | 입력 : 2016/04/01 [14:50]
▲ 전북 군산시에는 잘 보존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연희 기자

 

[뉴스쉐어=이연희 기자]따뜻한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지난 30일 전북 군산시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은 그렇게 90여 년의 긴 세월을 지나 또 한 해의 봄을 맞고 있었다.

 

외관으로는 평범한 단독주택으로 보이지만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잘 관리된 목조건물이 점잖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대문을 지나 바로 보이는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눈앞에 잘 가꿔진 정원이 펼쳐진다.

 

운치 있게 배치된 석조물과 돌다리, 연못 등 정원의 모습까진 한국 전통 가옥에서도 비슷하게 봄직도 하다.

 

부산에서 여행을 온 한 관광객은 정원 안쪽으로 시선을 옮겨 드디어 가옥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우와’하며 감탄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부유층이 사는 전통가옥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 한 2층식 목조 가옥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관광객은 이런 집은 처음 본다며 연신 놀라 했다. 그러나 일본인이 이곳에서 이렇게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생각에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근세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의 형식인 야시키 방식으로 지어진 2층 목조주택이며 앞에는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 이연희 기자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일제 강점기 부협의회 의원이며 여러 가지 옷감을 파는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지은 주택이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히로쓰는 조선인을 상대로 고리대금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이 가옥은 ‘장군의 아들’을 비롯해 ‘타짜’, ‘가비’, ‘범죄와의 전쟁’ 등 유명 한국영화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구한말 군산시는 여러 나라의 조계지가 설치된 개항장이었고 주로 일본인이 독점하고 나선 지역이었다.

 

일본은 호남 곡창 지대에서 수탈한 쌀을 반출할 때 군산항을 이용했다.

 

신흥동 일대 등에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몰려든 일본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군산 인구 1만3천 명 중 일본인이 절반이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군산은 작은 일본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했다.

 

광복 이후는 일본인들은 떠나가고 그들이 남겨 놓고 간 집이나 건물을 가리키는 ‘적산가옥’은 대부분은 허물어졌지만 군산 일대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일제 잔재라며 없애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역사를 반추하는 산 교육장으로 변모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도 적산가옥 중 하나이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구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군산지점장 사택도 볼 수 있다.

 

▲ 군산 신흥동뿐 아니라 영화동, 월명동 등 일대에서 적산가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구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군산지점장 사택(위)과 구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아래)의 모습.    © 이연희 기자


또 인근에는 쌀 수탈을 위해 설립된 구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구 군산제3청사)가 그 형태를 보존한 채 남아있어 수탈 기지였던 군산의 모습을 증명하고 있다.

 

군산은 1904년부터 해방기까지 외세에 억압받던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다룬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아도 일본의 수탈상이 잘 드러나 보이는 도시인지 알 수 있다.

 

군산시에 따르면 169건의 적산가옥이 남아있다. 이렇듯 많은 과거의 흔적을 지닌 군산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역사를 증명하는 도시로 재조명되고 있다.

 

1박 2일 여행지를 찾다가 서울에서 군산에 여행 온 두 관광객은 “일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을 빼앗긴 아픔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살았을 텐데 당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던 일본인들을 생각하니 침통하다”라며 “군산으로 여행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을 잊고 살았을 텐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설록 - 네 가지 시선' 장항준, "내가 인현왕후 였으면 장희빈 한 대 팼을 듯"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광고
광고
광고